불교/불교건축

천 년의 달빛을 머금은 고찰, 평창 월정사

myplaza 2025. 6. 29. 23:45

천 년의 달빛을 머금은 고찰, 평창 월정사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자락 깊은 곳, 울창한 전나무 숲길을 지나 마주하게 되는 월정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이곳은 단순히 과거의 유적이 아닌,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수행의 공간이며, 한국 불교의 영성과 문화가 오롯이 축적된 성소다. 월정사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정신적 안식처이자, 예술과 철학이 깃든 건축물로 존중받아 왔다. 이 절을 찾는 이들은 마음속 번뇌를 비우기 위해, 또는 천년의 숨결이 깃든 건축과 유물을 직접 마주하기 위해 이 고요한 산사로 향한다. 월정사는 특히 자연과 인문, 종교가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단순히 종교적인 기능을 넘어서 불교문화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이다.

 

월정사 전경
월정사 전경

1. 월정사의 연혁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자장율사는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오대산의 신령한 기운을 느끼고 이곳에 불국정토를 구현하고자 월정사를 세웠다. 창건 당시에는 사찰을 중심으로 수많은 암자가 형성되어 오대산 팔문이라 불리던 수행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고려 시대에는 국가적 행사와 왕실의 후원이 이어지며 사찰의 위상이 높아졌고, 조선 시대에도 많은 중창과 확장이 이뤄졌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여러 차례 소실과 복원을 반복했다.

현대에 들어 월정사는 단순한 사찰의 기능을 넘어서 한국 불교의 중심 수행처 중 하나로 다시 자리매김했다. 특히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로 지정되어 오대산 일대의 불교문화를 총괄하는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승려들이 이곳에서 정진하며, 템플스테이와 같은 현대적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도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2. 월정사가 소유한 주요 보물, 국보급 문화재

월정사는 수많은 국보 및 보물을 보유한 문화재의 보고로 평가된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국보 제48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의 정교한 석조기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9층이라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안정감 있고 정밀한 비례미를 지녔다. 탑신부의 장식이나 옥개석의 표현에서도 당시 장인의 뛰어난 기술력과 불심이 엿보인다.

이외에도 보물 제139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은 고려시대 조각예술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부드럽고 자비로운 표정, 안정된 자세, 정교한 의복 표현이 조화를 이루어 신앙적 대상이자 미술사적 가치도 매우 높다.

월정사 경내에는 다수의 불경 목판이 보존되어 있으며, 일부는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특히 오대산 사고에 보관되었던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는 월정사의 역사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해주는 중요한 증거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3. 월정사의 건축물 구조 설명

월정사의 건축물 배치는 전형적인 산지형 가람배치 형식을 따른다. 입구에 해당하는 일주문은 세속과 성역의 경계를 나타내며, 이 문을 통과하면 전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숲길 끝에는 천왕문이 자리하며, 내부에는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문은 외부의 악한 기운이 사찰 내부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상징적 기능을 수행한다. 천왕문을 지나면 월정사의 중심 법당인 적광전이 등장한다. 이 전각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우에 협시불로 자리한 독특한 삼존불 구도를 갖춘다.

적광전의 뒤편에는 명부전, 산령각, 그리고 범종루가 있으며, 각각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 산신을 모신 공간, 불음을 울리는 전각으로서 상징성과 용도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월정사의 가장 특이한 구조물 중 하나는 바로 앞서 언급한 팔각구층석탑이다. 이 탑은 중앙축선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에 배치되어 있으며, 탑과 전각의 배치가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승려들의 수행 공간인 요사채와,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선방, 그리고 템플스테이 운영동 등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 구조를 보여준다.

 

4. 월정사 건축물의 불교적·문화적 의미

월정사의 건축물은 단순히 기능적 목적을 넘어서 불교 사상을 공간적으로 구현한 상징체계로 작용한다. 예컨대 적광전은 불국토를 현실 세계에 구현하고자하며, 전각의 위치와 방향, 내부 불상의 구성은 삼보(··)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팔각구층석탑은 불법의 중심이자 우주의 질서를 상징한다. 8각은 팔정도를, 9층은 수행의 완성을 상징하며, 이는 불교적 윤리와 수행체계를 탑 자체에 담아낸 대표적 사례다.

사천왕상이 있는 천왕문은 외부의 번뇌와 악업을 걸러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 문을 지나면서 참배자는 일상과 세속적 사고를 내려놓고 정신적 공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문화적으로 월정사는 한국 불교 건축의 미학과 조형적 완성도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단청의 색채 구성은 오방색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과 자연, 신성의 조화를 상징한다. 건물의 기단과 초석, 기둥과 지붕선은 그 자체로 동양 철학이 깃든 조형언어이며,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시도가 담겨 있다.

또한 한국 불교문화의 연속성과 지속성을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오대산 사고와 함께 학문적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이처럼 월정사의 건축물은 신앙과 수행, 문화와 예술, 철학과 자연을 아우르는 통합적 상징체로 자리하고 있다.

 

마무리하며

월정사는 단지 오래된 사찰이 아니라, 한국 불교의 정수와 미학, 그리고 정신성이 응축된 하나의 복합 문화유산이다. 천 년 넘게 계승된 신앙의 힘은 지금도 이 사찰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그 구조물들은 후대에 길이 전해져야 할 보물이라 할 수 있다. 월정사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마음의 위안을 주는 치유의 공간이며, 우리의 문화적 뿌리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귀중한 장소이다.